오토모빌 정보(Automobile Info)

마세라티의 역사 이탈리아 자동차 (엠블럼 트라이던트/모터스포츠/기블리/MC20)

반응형

이탈리아 자동차 Maserati의 상징 엠블럼 트라이던트

이탈리아 감성이 느껴지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강렬한 배기음, 삼지창 모양의 트라이던트로 유명한 Maserati. 어떤차를 만들어도 스포츠카가 되어버리는 아이덴티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 벌써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회사가 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창립

1914 12 1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마세라티 가문의 다섯 형제가 만들어 시작 되었다. 처음에는 차량을 개조해서 레이싱카를 만드는 정도였는데 그들의 속도에 의한 열정 때문에 많은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1926년 티포26이 출시되면서 타르가 플로리오 경주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주목받기 시작 했고, 1929년에는 트리폴리 그랑프리라는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39년 인디애나 폴리스 500에서 이탈리아 메이커 중 최초로 우승하기도 했으며 이후 1957년까지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500여 회의 우승을 기록했다.

이처럼 창립 후 약 20년까지는 많은 대중이 탈만한 자동차는 만들지 않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럭셔리 세단을 만드는데 주력하다가 경영난으로 프랑스 시트로엥, 이탈리아 드 토마소를 전전한 끝에 이탈리아 거대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페라리와 같은 회사에 몸담게 되었다. 덕분에 페라리와 같은 부품과 엔진을 공유하며, 2016년 페라리가 피아트를 나와 자매회사가 되어서도 르반떼 엔진 공유는 계속 유지중이다.

현재 마세 라티의 본사는 오르시 가문이 인수 한 후 생산라인과 함께 새롭게 건설된 것으로 이탈리아 모데나에 있으며, 이곳에는 차량개발, 시험 및 신형스포츠카를 생산하는 마세 라티 이노베이션 랩이 있다.

 

상징-엠블럼

상징 엠블럼 트라이던트

이 회사의 삼지창 모양의 로고는 트라이던트라고 부르는데 마세 라티가 시작된 볼로냐 지역의 넵튠의 분수에서 유래 되었다. 넵투누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로마 신화에서 라틴어식으로 부르는 이름인데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엠블럼으로 응용한 것이다. 마세라티 3형제중 예술에 재능이 있던 마리오 마세 라티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 외에도 말의 신의 의미도 있어 고급스럽고 속도감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로서 마세 라티에게 잘 어울리는 상징이다.

 

반복되는 경영 위기

Maserati를 창립했던 알피에리는 1928년 경주에 나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 사고의 합병증으로 1932년 사망하게 된다. 이후 알피에리는 기세가 꺽이며 경영난에 겪게 된다.

1937년 오르시(Oris)가문에 회사를 매각하게 되었지만 마세 라티 형제들은 기술자로서 10년간 고용 계약을 해 계속해서 마세 라티의 레이싱 카를 제작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동안에 마세 라티는 공구, 스타크플러그, 전기자동차 및 부품등을 생산했고,

오르시 가문은 회사 유지를 위해 양산차 제작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이때 최초의 일반 주행용 차량인 A6 1500 1947년에 탄생되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후속 모델들이 계속 출시 되었고, 이를 계기로 마세 라티의 운영이 크게 인정 받게 된다.

1957년에는 레이서 판지오가 250F를 타고 두번째 세계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레이싱에서 철수 했다. 그리고 3500GT가 제네바 모터쇼에서 출시되었다.

이후 점차 성장세였던 마세 라티는 1962년 무렵 빠른 속도로 모델의 종류를 늘려가는데 마세 라티하면 유명한 기블리, 콰트로 포르테가 이 시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드물던 럭셔리 GT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설립 초기때부터 고수하던 소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오히려 재정난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결국 1968년 고급차 메이커로 발돋음 하려던 시트로엥에 인수되어 풍부한 자금을 지원받아 3배정도로 규모가 성장했으며, 이 시기에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경쟁할만 최그급 슈퍼카에 엔트리급 스포츠 모델 라인업도 충실하게 갖췄다. 게다가 시트로엥의 도움으로 조립품질이 상승해 나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1975년도에 시트로엥이 토마소에 마세 라티를 팔아버린다.

돈이 안되어 보이거나 데토마소와 라인업이 겹치는 모델들인 카라미나 캄신, 메락등은 모두 단종 되었고, 세계 최초의 양산용 트윈터보 엔진인 비투르보의 엔진과 플랫폼을 가지고 비슷한 자동차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기술의 발달로 한 플랫폼과 엔진공유를 해도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나 다른 성격의 차를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원가 절감 등의 이유로 플랫폼 공용화를 거의 모든 회사들이 실행중에 있지만 이 당시에는 최고급/고성능 자동차는 무조건 전용 차대를 가졌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 하락에 더욱 부추겼다. 데 토마소 역시 꾸준한 불황으로 인해 자금이 부족해져 신차출시는 꿈도 못꿨고, 심지 80년대 후반 경기불황으로인해 마세 라티 스스로가 크라이슬러 고급차의 일부분 개발대행 따위의 일을 따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이후 1993년 피아트가 M aserati를 인수하면서 이 회사는 다시 재기를 시도 한다. 당시 피아트는 나름 자금력이 안정된 상황이어서 새로 개발한 콰트로 포르테와 3200GT같은 신차를 내놓으며 호평을 받는다.

1997년에는 페라리 산하 브랜드로 편입된 이후에 출시된 4200GT MC12는 페라리 엔진을 공유하면서도, 마세 라티다운 안락한 주행감을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라인업이 3개밖에 안됨에도 창사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얻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시장에서 포르쉐보다 윗급이었다. 또한 호화로운 실내에 뛰어난 주행감각으로 대형 세단 가운데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운전재미가 좋은 자동차라는 평가를 받는 등 이때까지는 어느 나라에서든 호평을 받았고 시장평가도 최고에 달했다.

 

그러나 피아트가 페라리와의 시장간섭도 피할 겸 대중성 라인업 확대로 대박을 터트린 포르쉐를 보며 라인업을 조금 대중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수정한다. 여기에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불경기로 인해 더욱 후속 모델들의 차급을 내리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이 갑부를 대상으로 하는 슈퍼카를 비롯한 최고급 럭셔리카, 혹은 완전히 상반된 서민시장층의 저렴한 대중차를 만들기에는 익숙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목표로 도전하게 된 시장인 메르세데스와 포르쉐로 대표되는 중산층을 타켓으로 한 프리미엄 고급차 시장에서의 노하우는 전혀 없다는게 문제였다.

게다가 여전히 수작업 공정들을 많이 남겼다 보니 당연히 단가를 저렴하게 낮출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원가를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각종 스위치류를 말도 안되게 넣는다던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역시 그룹내 모든 모델이 돌려쓰게 하는것도 모자라 편의 장비를 빼버렸다. 게다가 신차라고 출시했는데 전작보다 못한 성능과 주행감각에 골수 팬들이 모두 등을 돌려버렸고, 신규 고객들은 낮아진 가격에 구입시도를 했으나 이탈리아 특유의 허접한 조립품질에서 비롯되는 잔고장까지 더해져 여론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게 나빠졌다.

페라리 캘리포니아

게다가 그란투리스모 후속으로 계획해 정성껏 개발한 최고급 스포츠 모델은 상품화 하는 과정에서 개발비에 맞는 가격을 붙여야 한다는 이유로 같은 계열사인 페라리의 페라리 캘리포니아에 사용 되어지면서 정작 Maserati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스포츠 모델이 노후화 되었다.

 

그 후로는 콰트로포르테, 그란투리스모 등의 대형 세단과 쿠페로 연명하다가 2013년 엔트리급이라고 새로운 모델 기블리를 내 놓은 것이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에 쿠뱅과 알피에리 등의 컨셉카를 내놓으면서 브랜드를 확장시킬 수 있었는데, 중국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한데다가 잔고장 등의 품질로 여러 언론의 질타를 받으며 판매량이 다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상 수익에 달성하지 못해 르반떼의 출시가 미뤄져 2017년에 나왔으며, 그란투리스모 하급 쿠페가 될 예정이었던 알피에리가 그란투리스모를 아예 대체 시키는 모델로 변경되었다.

 

이후 마세라티의 행보

 

 마르치오네 회장의 마지막 주총회인 2018, 향후 5년 계획을 다시 발표 했다. 기블리와 콰트로 포르테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예전보다는 점점 나아지며 현 목표는 포르쉐를 따라잡는 것인데 카이맨을 뺸 모든 포르쉐 모델들에 콰트로포르테-파나메라, 르반떼-카이엔, 알피에리-911, 그리고 새로운 크로스오버-마칸으로 각각 대응하는 모델들을 생산할 것이라 밝혔다.

2017년에는 기블리가 콰트로포르테와 같이 그란루소와 그란스포츠로 페이스리프트되었다. 가격이 150~200만원 정도 올랐으나 V6 Q4용 엔진이 르반떼와 동일하게 430마력으로 상승했으며 제로백은 4.7초로 0.1초 단축되었다.

르반떼 포함 포르쉐 카이엔 터보를 인식한 것인지 콰트로 포르테에 들어가는 V8 GTS 엔진을 장착해 출력은 530마력으로 세팅해 출시 했다.

2019년 스포츠 쿠페 전기차와 르반떼 하이브리드 출시와 함께 마세 라티는 전기자동차 제조 회사로 전환하며, FCA 그룹도 해당 년도부터 전기차 라인업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MC20

2020년에는 미드쉽 슈퍼카인 MC20소식을 전한 것은 물론 전기 이동성(e-Mobility)확대에 주력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모든 라인업을 전동화할 예정이라는 전동화 비전을 추가 공개했고, 특유의 배기음을 계승하고자 소음이 큰 전기모터를 개발중이라며 모터 소리 영상도 공개했다.

또한 자체개발 엔진인 Nettuno를 공개했다. 배기량 3L 트윈터보 6기통으로 포뮬러1 기술을 접합해 MC20에 적용한다.

MC20이외에도 2022년에는 3월말 포르쉐 마칸과 경쟁할 중형급 SUV 그레칼레 출시도 예정되어있으며 그란투리스모, 그란카브리오 후속으로 알피에리가 나온다고 한다.

 

 

Maserati 특징

가장 큰 특징은 엔진 구동음이 독특한것이다. 엔진 튜닝 전문가와 피아니스트, 작곡가까지도 자문위원으로 초빙할 만큼 공을 들인다. 거기서도 유명한 배기음은 콰트로 포르테이다.

 보라

또 바람보다 빨리 달리는 차를 만들겠다는 의미에서 차에 바람의 이름을 주로 붙이는데 단종 모델인 미스트랄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보라, 기블리 역시 바람의 이름들이다. 태풍의 바람속도가 150km/h정도인데, 마세라티가 설립될 당시에는 자동차로 이 속도에 도달하는게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마세 라티는 차량의 스펙을 부풀리는게 일상이었던 당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제원상의 성능 표기가 스포츠카 회사중 혼다와 함께 가장 정직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자동차 공업 전반의 문제점이 꽤 심했다. 고급브랜드치고 품질이 좋지 않다는 평을 많이 들어왔다. 가격이 억단위인 프리미엄 브랜드 차인데 문짝이 어긋난 곳이 없으면 마세 라티가 아니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특히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는 10년째 페라리 F430에 들어간 V8 4.7L 자연흡기 엔진을 유지중이고, 센터페시아는 300C과 비슷하며 경차만큼 뒷자리가 좁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수리비가 비싼편인데, 부품가격을 공임이 뛰어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부품까지 비싼 편이어서 BMW, 벤츠, 아우디 같은 독일 3사와 비교하면 독일 브랜드가 수리비도 안정적이고, 국산차 수리비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이들의 이런 낮은 품질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지적을 받아 왔다. 그나마 피아트와 페라리의 손길을 거쳐 품질과 신뢰성이 많이 개선된 편이지만 여전히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과 마세라티

한국에서는 페라리에 비해 인지도가 상당히 낮았지만 201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외제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것에 더해 2013 SBS 드라마 상속자들에 협찬을 하고, 언론을 통해 국내 유명 여성 연예인 일부가 마세 라티 오너로 알려지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제법 어필이 되었다. 탑기어 코리아에서도 마세 라티 챠량 리뷰를 자주 했고,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리뷰하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2007년 페라리와 함께  FMK(포르자 모터스 코리아)를 통해 진출하면서 처음 오픈한 신사동 전시장을 오픈 했다.

이후 2015년 동아원그룹이 어려워지면서 200억원에 FMK는 효성그룹이 인수했다.

또한 2014년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최초의 승용 디젤 모델을 선보였다. 콰트로 포르테 디젤과 기블리 디젤 두종류를 출시했는데 유럽과 함께 전 세계에서 인기가 많고 R&D도 활발한 디젤 모델 시장에 뛰어드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피아트가 인수한 크라이슬러 산하 지프의 그랜드 체로키에 들어가는 V6 3.0L 커먼레일 엔진이 장책됐다. 이 엔진을 만든 회사는 VM 모토리이며 현재 피아트 산하에 있다.

 

모터스포츠 속 마세라티

모터스포츠에 참가한 F250

이 회사는 1940, 50, 60년대에 걸쳐 모터스포츠에 열심이었는데 특히 F1 프로그램은 광범위하게 성공적이었고, 팩토리 팀은 모두 9번 그랑프리 우승을 해냈으며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마세 라티의  250F 1957년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헀다.

 당시 마세라 티 4CLT 250F 두대의 F1 차량을 설계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4CL도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다. F2 차량으로 설계된 A6GCM F1에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1950년대 후반의 재정적 어려움으로인해 팀은 250F가 여전히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1958년에는 포뮬러1에서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개별 참가 팀들은 1960년대 까지 250F 섀시를 계속 사용했다.

또한 1960년대에 영국 포뮬러1팀인 쿠퍼에게 엔진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 협업에서 가장 성공적인 차는 마세 라티 V12엔진을 장착한 쿠퍼-마세 라티 T81이었으며 각각 존서티스와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참가한 1996년 멕시코 그랑프리와 1967년 남아프리카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차량이다.

추가로 Maserati의 F1참가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차량으로 등장하는 모델이 있는데 바로 1948 4CLT. 이차는 1946년에 도입된 새로운 F1 규정에 따라 제작된 최초의 자동차 중 하나였으며, 1938 4CL 뵈튜레(Voiturette)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오래된 디자인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개발 중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쟁력이 있었고 전쟁 후 경주가 재개되었을 때 포뮬러 원 경주에 참가하면서 사용한 차량이다. 이로 인한 성공은 마세 라티가 새로운 자동차 설계를 개발하도록 장려했고 이런 개선은 4CLT로 발달한다.

이런 레이싱 역사가 꽤 오래 이어지지 않았던 마세 라티는 전기이동성 사업 확대에 맞춰 2023년 포뮬러E 출전 참가 소식을 전해 주목 받고 있다. 마세 라티의 포뮬러E 참가는 최초로 E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라는 점, 그리고 이 회사 65년만에 레이싱계에 복귀하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동차 휠클리너 - 리퀴몰리 휠 세척 크리너 & 철분제거 세정제 (PN 20836)N : 케미컬 사이트

국내 최고 성능과 인기를 가진 수입 자동차 전용 휠 클리너

smartstore.naver.com

 

 

[하도공식인증점] 맥시멈 트윈터보 엔진 치료 복원제 [모든 승용차 & SUV & 고출력 스포츠카 & 소형

엔진오일 첨가제의 끝판왕 ~!!

smartstore.naver.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