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쌀가게 ‘경일상회’ 주인이던 아산 정 주영회장이 현재의 서울 마포구 아현동인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에서 운영했던 아도서비스(Art Service)라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볼 수 있다.
1940~1942년 당시 조선에서는 자동차는 극소수 부유층이나 소유할 수 있는 매우 비싼 사치품이어서 간단한 수리여도 기간을 늘려 공임을 더 받거나, 부실한 수리로 다시 정비소를 찾게 하려는 관행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수리일은 아무리 큰 고장이라도 무조건 3일 이내로 빨리, 완벽하게 수리한다는 가치를 내걸었다. 대신 수리비용은 다른 공장에 비해 3~5배를 받는 방침으로 수익을 많이 내며 순조로운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이후 공장이 불타 없어지고 전쟁까지 일어나 사업이 어려워 졌다. 결국 일제의 기업 통제정책에 의해 아도서비스가 강제 합병되자 정 주영은 자동차 수리업을 정리하고 남은 자금으로 트럭을 구입해 석탄 운반업을 시작해 1946년 현대 자동차 공업사를 설립한다. 이것이 ‘현대’라는 이름의 시작이다. 이후에는 미군 병기창에서 하청을 주로 받아 현대건설로 변모했다.
[자동차 제조업의 시작]
현대 자동차의 공식적인 역사는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시작한다. 1967년 정 주영의 동생 정세영이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해 당시 자동차 최강국인 포드 모터 컴퍼니와 기술 제휴를 체결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도 기술제휴를 맺었고, 1974년 현대차 서비스를 세워 자동차 수리사업에도 진출해냈다.
1975년 울산공장 중공 후 1976년 1월 대한민국 자동차 공업의 자립화를 선언한 고유 모델인 포니 자동차를 시작으로 독자모델 생산을 시작해 쏘나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최대 자동차 기억으로 떠올랐고, 아시아에서 2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이 되었다.
이런 현대 자동차의 행보가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자동차 산업을 위협할거라 생각했는지 1977년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는 정 주영 회장을 만나 현대가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면 포드든 제너럴 모터스든 원하는 조건으로 조립 생산할 수 있도록 현대를 지원하고, 중동 건설에서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정주영은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나 다름없고, 일생에서 번돈을 다들여 실패하더라도 후대에 자동차 공업을 성공시킬 디딤돌을 놓는다면 후회는 없다’며 거절하며 독자개발을 계속 밀어 붙였다.
하지만 이당시 독자개발을 하는 것은 현대에게도 도박 같은 일이었다. 독자개발을 하려면 자본의 20~30배의 돈이 필요하고, 타산이 맞으려면 최소 5만대는 팔아야 하는데 1973년 대한민국 자동차 판매량이 버스, 트럭 다 합쳐도 겨우 18,000대, 그 중 현대는 겨우 4,000대를 파는 상황이라며 정 주영의 동생 정인영이 반대 했다고 한다. 하지만 포니 자동차 개발 후 출시 전부터 62개국, 228곳의 상사에서 수입을 희망했을 정도로 다행히 국제적으로 초대박을 치게 된다.
현대는 1976년에 에콰도르에 포니 자동차 7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국산자동차를 해외시장에 내놓았으며 1983년 캐나다 현지법인을 세워 해외판매망 구축을 시작했다. 또한 1985년에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효문산업을 합병하고 1986년에 포니 자동차엑셀을 북미지역으로 수출하면서 북미 시장에도 진출하였으며 1989년 캐나다 퀘벡 주 브로몽에 현지 공장을 세웠으나 잇따른 부진으로 1993년에 해당 공장을 닫았고, 1995년에는 전북 전주공장, 1996년에 충남 아산공장을 각각 세웠으며, 같은 해에는 인도 현지법인을 세웠다.
정 주영 회장의 말처럼 현대는 처음부터 국제경쟁력을 갖춘 고유모델 국산자동차를 만드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세계시장으로 진출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자동차 엔진 개발]
경쟁력을 갖춘 고유모델 국산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 엔진 개발이다. 정주영은 1960년대에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자동차 엔진을 자체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들의 전문성이 낮은 편이었고, 정부에서도 현대중공업과 현대 자동차중에서 무엇을 택할지 압박하고 있던 시기여서 현대 자동차의 사활이 걸린 시기였다.
하지만 정 주영은 여기서 중공업은 나중에 투자해 키워도 된다고 판단해 현대 자동차를 택했고, 본격적으로 자체 엔진 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에서 GM에 근무중이던 이현순 박사를 불러 엔진 자체 개발 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이박사가 제안을 수락하자 정회장은 연구소를 건설해줬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자동차 마북리 연구소다. 당시 아무도 성공할거라 장담하지 못했으며, 미쓰비시에서 자동차 엔진 설계도를 사와 제조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미쓰비시의 압박도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현순 박사로 인해 현대차는 국내 최초로 자체 엔진을 개발해냈고, 이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엔진을 ‘알파엔진’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후 베타엔진, 감마엔진을 설계, 개발했다. 하지만 감마엔진은 당시 현대 자동차의 경영진이 미쓰비시의 시리우스2엔진과 관련해 계약을 맺는 바람에 설계만 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그후에도 이현순 박사는 감마엔진에서 성능을 더욱 향상시킨 세타엔진을 개발해냈고, 이것이 바로 NF소나타에 장착된 엔진이다. 이후 2008년까지 타우엔진을 개발했다. H엔진, G엔진등 계속해서 발표하면서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 모두 자체 기술력으로 일반 승용차량과 상용차량 범위에서 사용되는 모든 배기량의 엔진을 설계/생산하게 되었다. 엔진을 직접 개발한지는 다른 해외 브랜드에 비해 오래되진 않았지만 엔진성능은 상당히 뛰어나 대체적으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에쿠스와 제네시스에 탑제된 타우 V8엔진과 아반떼에 들어가는 M16 GDI엔진은 미국 Ward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내리 선정되기도 했으며, 기아 스팅어GT, 제네시스 G70, G80 스포츠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람다 3.3L V6 트윈터보 엔진이 2017 워즈오토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포함되었다.
GDI는 에쿠스를 도입하면서 미쯔비시에서 같이 넘어왔지만, 당시에는 단점이 부각되어 GDI엔진을 MPI 분사로 바꾸는 등 엔진을 거의 새로만들어서 시스템을 삭제했다. 2017년에는 GDi엔진을 4기통 1.6L 엔진부터 8기통 5.0L 엔진까지 폭넓게 적용 했다.
[경영권의 이동]
현대차는 1998년 12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거대 자동차 재벌로 1998년 12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거대 자동차 재벌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
1999년 초에는 현대차는 정주영 회장의 동생 정세영의 리더쉽으로 가파르게 성장해 세계 11위까지 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 주영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차기 후계구도에 대한 이슈가 있었는데 1999년에 치뤄진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정 주영의 장남 정몽구와 정세영이 대립해 정세영 측 인물들이 이사로 선임되면서 정세영 부자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몇 일 뒤 현대그룹은 정세영 명예회장이 현대차 경영에서 완전히 퇴진하며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체제로 개편된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 했다. 이와 같은 현대그룹의 내용은 정세영과 미리 조율된 내용이 아니었지만, 보도 다음날 거행된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의 이임식에서 정세영은 ‘정 주영 명예회장 장자이니 정몽구 그룹 회장이 현대 자동차를 이어받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런 현대 자동차는 1999년 현대정공 자동차부문과 현대 자동차써비스를 합병했고, 같은해 2002 한일 월드컵 및 유로 2000후원사로 선정되어 세계적으로 위상을 높였다. 2000년 8월 다른 계열사 9개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재의 현대 자동차그룹을 형성했다
2009년에는 정몽구의 아들인 정의선이 부회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현대 제네시스는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었고, 2011년에도 현대 아반떼(엘란트라)가 선정되었다. 2015년에는 현대 자동차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고성능 브랜드인 현대N을 발표 했으며, 2019년에는 제네시스 G70과 현대 코나가 다시 북미 올해의 차와 SUV 부문을 수상했다.
2020년 3월에는 정몽구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사입했으며 10월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 자동차 및 현대 자동차그룹 회장직에 추대되었다. 정몽구 전 회장은 앞으로 그룹 명예 회장직을 유지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특징]
현대차의 특징은 내수시장에서는 경쟁사 대비 비슷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더 우수한 상품성을 자랑하며 크고 넓은차를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 성향을 반영해 넓은 실내공간과 풍부한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1.6~5.0L 가솔린 엔진, LPi엔진, 1.6~3.0L 디젤엔진, 수소, 전기 등 다양한 연료 사용가능성과 염가패키지로 택시, 렌터카, 관공서등 플릿시장에서 또한 높은 시장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또다른 특징은 부품 및 기술들을 계속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단기간에 기술을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현재는 분리되었지만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와 합자해 기술 이전을 시도한 현대 케피코는 독자 기술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유럽 및 일본의 자동차 기업과 비교해 짧은 시간안에 상당한 수준까지 기술격차를 좁혔으며, 엑센트가 나오기 전까지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협력관계를 통해 기술제공(엔진, 파워트레인 등)을 받아가는 기술종속적인 관계였지만 현재는 자체기술을 바탕으로 한 설계능력을 갖추고 일부 기술은 외국경쟁업체에 팔기도 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과거 80년대 미쓰비시는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자동차 엔진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열티를 깎아줄테니 엔진 개발연구소를 폐쇄 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 생산해 내고 자회사인 현대트랜시스와 현대모비스를 통해 부품 및 소재까지도 서서히 자체적으로 생산, 소화해내면서 점차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내놓는 자동차 관련 기술이나 시스템이 늘어났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주행 시스템중 대표적인 것이 AGCS(Active Geomatric Control Suspoension, 능동제어 서스펜션 시스템)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자체 변속기를 개발하는 회사가 몇 없는데 선진 자동차 업계 후발주자로서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점, 시트 또한 독자 개발을 하고 생산을 할 수 있는 시트 공장이 있다는 점은 드문 사례이다. 심지어 현대 제철을 통해 차량 관련 철강까지도 직접 수급하는 수준이 되었다.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최대한 많은, 가능한 모든 부분을 재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현대가 지금까지 성장한 원동력이 되었고, 앞으로도 현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 디자인]
현대차의 디자인은 세계 여러곳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각자 디자인 한 것을 경합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데, 스튜디오끼리 경쟁하는 구도여서 그런지 디자인 취향이 조금씩 다르다. 일례로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아반떼HD, 싼타페, 1세대 투싼이 미국에서 디자인 되었고, 신형 투싼, 쏠라리스(베르나의 러시아 모델), I 시리즈는 독일 뤼셀르 하임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스튜디오끼리 경쟁하는 구도여서 그런지 디자인 취향이 조금씩 다르다. 일례로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아반떼HD, 싼타페, 1세대 투싼이 미국에서 디자인 되었고, 신형 투싼, 쏠라리스(베르나의 러시아 모델), I 시리즈는 독일 뤼셀르 하임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독립이후 디자인의 변화가 크게 생겼는데 i30 3코나, 그랜저 IG등에서 처음 선보이기 시작한 캐스캐이딩 그릴이 현대차 디자인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용광로에서 쇳물이 흐르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며, 차종마다 차이가 있으나 헥사고날 그릴의 하단 양쪽 사선에 안쪽으로 굴곡을 준 형태다.
코나를 시작으로 SUV라인은 분리형 헤드램프를 써 패밀리룩의 통일성을 주면서 눈부심 방지 효과도 준다. 넥쏘에서는 삼각형 수준의 역동적인 그릴을 선보였는데, 르노 룩을 닮은 듯한 스타렉스같은 예를 제외하면 모두 헥사고날 그릴에서 캐스케이딩 그릴로 바뀐다는 일관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계속 변화되어 중구난방 같이 느껴졌을 수 있던 디자인은 2018 제네바 모터쇼에서 출품된 르 필 루즈 콘셉트카를 통해 발표된 디자인 철학인 ‘센규어스 스포티니스’로 통일 되었다. 감성이 더해진 스포티함이라는 의미로 중국 전용 모델인 현대 라페스타, 페이스리프트된 아반떼, 새롭게 변화된 8세대 소나타에 적용 되었다.
2015년에는 폭스바겐 그룹출신 디자이너를 역임한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했고, 2016년에는 세계적인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을 현대디자인센터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영입된 바가 있다. 현재 루크 동커볼케는 현대차 CCO(Chief Creative Officer)와 부사장으로서 전반적인 브랜드 가치 상승을 이끌어 내고 있고, 이상엽은 현재차 디자인센터장, 부사장으로 이 둘의 자리는 투탑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 자동차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산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겨 2월 7일부터 현대차의 모든 공장이 셧다운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20년 3월에는 미국의 빅3 자동차 브랜드인 제너럴 모터스, 포드 모터 컴퍼니, 크라이슬러와 함께 현대차 미국 공장 생산이 중지 되면서 미국 현지 공장이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해외 판매량 역시 코로나19와 일부 해외 공장 가동 중단 등의 영향으로 2020년 5월 판매량이 전년대비 49.6% 감소했다. 반면 국내시장에서는 다행히 신형모델의 약진으로 해외에 비해 소폭 반등했다.
현대차는 계속해서 미래지향적인 비전과 기술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CES2020에서 우버와 공동 개발한 항공모빌리티를 선보이며 항공과 지상에서의 이동수단을 결합한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며,
앱티브와 함께 자율주행 전문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소니픽처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해 디지털 컨텐츠와 현대 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를 결합하는 등 의 기술 협업을 활발히 진행중이다.
관련된 이야기로 2021년에 현대자동차의 Apple Car 생산 협력에 관한 Apple과의 협업이야기로 한창 이슈가 됐었는데, 현대차는 이에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요청을 받고 있으나 애플과의 협상은 초기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이후 월 블룸버그는 애플이 현대차그룹과 진행해왔던 애플카 위탁생산 관련 협의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는 보도를 냈다. 비밀 유지를 굉장히 중시하는 애플에서 협의 소식이 유출된 것에 대해 크게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전면 중단인지, 잠정 중단인지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당시 이런 보도 및 공시로 인해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현대그룹 현대 자동차의 시작과 최근 소식까지 역사를 살펴 봤다. 종종 대한민국 대표 자동차 브랜드 임에도 몇몇 문제점들로 내수시장에서 욕을 먹을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현대 자동차는 자동차의 국산화를 위해 노력을 하며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기에 국민기업으로 사랑받고 있는 기업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또 어떤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발전된 국산자동차를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오토모빌 정보(Automobile Inf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쌍용자동차 신차SUV 출시 토레스(J100)-가격 및 정보 (0) | 2022.07.01 |
---|---|
여름 장마철 대비 자동차 관리 및 차량 점검 사항 (0) | 2022.06.30 |
[혼다 포르자 모델비교]300cc 스쿠터 350 vs 700cc 스쿠터 750 (0) | 2022.06.21 |
슈퍼카,스포츠카 브랜드 마세라티 모터스포츠에 드디어 복귀?!-전기차레이싱 포뮬러E (0) | 2022.06.02 |
혼다 오토바이 슈퍼커브란?-스쿠터 추천, 특징 (0) | 2022.05.24 |